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오늘의 향기를 맡아본 적 있나요?

날씨의 향기가 매일 같이 변하는 환절기입니다. 이번주 화요일에는 봄의 향기가 났어요. 겨울을 지나 대기가 약간 습해지면 겨울에 나지 않던 풀과 흙의 향기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계절이 날씨만 이르지는 않나 봅니다.

2024. 01. 2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기숙사.

룸메이트와 생활패턴이 영 맞지 않아요. 저는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10시에 일어나는데 룸메이트는 밤새 컴퓨터를 하다가 아침에 잡니다. 모니터 불빛이랑 키보드 소리가 너무 거슬려서 담요를 커텐처럼 설치해봤어요. 생각보다 불빛이 잘 막혀서 좋았습니다. 키보드 마우스 소리가 거슬리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점심에는 학식에서 와장을 우연히 만났어요.

2024. 01. 2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RIST 4동.

출근하면서 연구실에 이것저것 챙겨갔어요. 샛별이 준 오쏘몰을 다 먹어서, 엄마가 준 발포 비타민을 가져다뒀습니다.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 당분간 커피는 안 사가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티백도 조금 챙겨갔어요. 예전에 커피를 한번 끊은 이후로 카페인이 없는 차들을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쩡원이 티백을 몇 개 챙겨줬어요. 티백들을 썸머가 3D 프린터로 뽑아준 클램쉘 거치대에 꽂아뒀습니다. 연구실 내 자리에 아직 모니터가 없어서 거치대를 못쓰고 있었는데, 티백 꽂이로도 좋은 것 같아요.

오늘은 부서를 배치받았습니다. 우리 교수님의 지도학생은 3명인데 5개의 부서에 들어가야했어요. 가위바위보를 이긴 탓에 비둘기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연구 참여하는 학생들을 인사시켜주시면서 저를 석사 과정생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이제 진짜 대학원생이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오늘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퇴근하고 방에서 일할까 싶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한숨 자버렸습니다. 교수님께서 실험 결과를 빨리 원하시는 것 같아서, 내일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어요.

2024. 01. 29.,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잠깐 자고 일어났을 때 몸살 기운이 약간 있어서 라켓볼을 칠까 말까 고민했는데, 라켓볼을 치면서 컨디션이 괜찮아져서 다행이었습니다.

2024. 01. 30.,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날씨의 향기가 좋았습니다. 부우에게 오늘 날씨 향기가 좋다고 말했는데 그런게 나냐고 되묻더라고요. 날씨에서 향기를 다들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

어젯밤에 코드를 짜두지 않아서 미팅 전까지 데이터를 뽑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코드는 금방 완성했어요. 실험 특성 상 원래 돌리던 트레이닝 방식보다 메모리를 훨씬 많이 썼지만, 일단은 최적화를 하지 않고 GPU를 많이 써서 해결했습니다. 학습은 금방 끝났는데 평가가 오래 걸려서 문제입니다. 토큰 생성하는 설정을 잘못 건드린거 같은데 다음에 한번 해결해보려고요.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부우랑 산책을 하면서 지금 프로젝트의 어려움에 대해 푸념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재밌는 상상도 했어요.ChatGPT에게 수능 국어를 풀리는 프로젝트가 있다는거 아시나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미래에는 메가스터디에서 각 년도별로 LLM을 파인튜닝 한 다음에, 수능이 끝난 직후 각 모델들을 이용하여 경향성 분석 자료를 내놓을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재밌었어요.

연구실로 돌아와보니 평가가 끝나있더라고요. 성능이 6배 정도 좋아졌습니다. 뿌듯해하면서 슬랙에 올렸더니, 교수님께서 축하해주시면서 데이터셋에 혹시 오염이 있었는지 확인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Exact Match 기준으로 성능을 평가하고 있었는데, 이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간 것은 데이터 오염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검증 하지 않고 보고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테스트셋이 오염됐더라고요.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되니까!

데이터셋을 급하게 다시 구성했더니 샘플 수도 작아지고, 성능도 좋지 않게 나왔어요. 아쉬웠지만 그래도 당장 내일 가져갈 매트릭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새벽 6시에 깼습니다. 룸메이트의 마우스 소리 때문에요. 입사한 첫날부터 매일 밤을 새서 컴퓨터를 하시는데, 새벽에 사람을 깨게 만들 정도로 하시는건 너무한 것 같아서 일어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침에는 삼성 미팅과 교수님 미팅이 잡혀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면서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척척학사는 무슨 댕청학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2024. 01. 3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출근길에 일어날 준비를 하는 목련을 봤어요. 정말 봄이 오려나봅니다.

새로운 데이터셋도 준비할 겸 데이터 전처리 파이프라인을 따로 분리해서 새로운 리포지토리를 팠습니다. 지금 실험에 쓰고 있는 리포지토리가 너무 비대해져서 분리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고, 우리가 학습에 이용한 데이터를 다른 팀원이 다양한 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분리하고 싶었어요. 기존 데이터와 처리 파이프라인을 옮기고, 새로운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서브모듈을 추가하려했는데 LFS 대역폭 제한이 걸리더라고요. 삼성 쪽에 쪼개서 올려달라고 요청드렸는데 밤에 결과물을 푸시해주셨어요. 야근을 시킨 것 같아 괜히 미안했습니다.

새벽에 룸메를 너무 쏘아붙인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마이쮸를 주면서 사과했어요. 룸메도 낮 동안 방안을 생각해봤다고 하더라고요. 본인 생활패턴을 고치기는 어렵고 방에서 컴퓨터를 꼭 해야겠대요. 대신 밤에는 아이패드랑 스마트폰으로 키보드 마우스를 대체해서 쓰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소리가 날까봐 걱정했는데 바꾸고 난 뒤로는 조용해져서 만족했습니다.

참고로 룸메가 마이쮸를 엄청 좋아해요. 쌓아두고 먹더라고요.

2024. 01. 3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2024. 01. 31.,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대운동장.

태우랑 러닝했습니다. 태우가 호카 오네 오네 러닝화를 샀는데 엄청 예쁘더라고요. 나도 곧 러닝화 새로 사야하는데 호카 러닝화를 장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오늘은 5km를 뛰었어요. 그리고 누적 400km를 달성했어요. 뿌듯했습니다.

오늘 조인트 미팅에는 교수님이 참석하지 않으셔서 제가 대신 포스텍 쪽 진행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한 직후에 몇 초의 정적이 흘러서 뭐 잘못말했나 무서웠습니다.

학교 세탁소에서 학위복을 빌렸어요. 우리 학교 학사 학위복은 그냥 검정색이라 무난합니다. 못생기지 않음에 감사하면서도 더 예뻤으면 하는 욕심이 납니다. 서울대 학사 학위복 예쁘더라고요…

출근해서는 데이터셋 파이프라인을 더 손봤습니다. 데이터셋이 너무 커서 꼬리재귀 먹인 것들 약간 덜어내고 로직들을 병렬화시켰습니다. 병목 구간이 IO 바운드일 것이라 예상하고 대충 파이썬 빌트인 스레딩을 적용시켰는데, 성능 향상 폭이 크지 않아서 멀티프로세싱을 해야했습니다. 여러 병렬화 라이브러리들을 이것저것 써보다가multiprocess를 택했습니다. 파이썬 빌트인 multiprocessing은 pickle을 이용해서 제약사항이 많은데, multiprocess는 pickle 대신 dill을 이용해서 제약들을 풀어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API도 비슷하고요.

동아리방에서 게임하다가 동아리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새터 동아리탐방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 중에 있는데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덱 제작이랑 콘텐츠 개발 그냥 내가 하겠다고 말했어요. 정말 지독한 일 중독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졸업식 날이었습니다. 8시부터 준비했어야 했는데 침대에서 뭉개다가 조금 늦게 일어났어요.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습니다. 오래간만에 꾸꾸꾸꾸했습니다. 고데기도 하고 화장도 했어요. 티 안나게 화장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좋아서 좀 많이 올렸나봐요. 엄마 아빠가 얼굴 보자마자 화장했냐고 물어봐서 뾰루퉁했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박사는 이름 별로 지정석이 정해져있었는데, 학사는 학과별로만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서 자유석이었습니다. 졸업식이 꽤 길어서 친한 친구와 함께 앉고 싶었는데 다행히 태우를 만났어요. 같이 앉아서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우리 학교는 올해부터 학사 졸업생도 모두 단상에 올라가서 학위기를 받습니다. 단상에서 학위기를 받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서울에서 졸업식을 보러온 샛별이 전교생이 단상에 올라가는 걸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체육관.

사실 학위기가 아니라 학위가 교환증을 받았어요. 학사 자리가 자유석인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지요.

끝나고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찾아서 사진을 찍었어요. 같이 사진 찍을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발목을 수술한 탓에 졸업식에 오지 못한 헤일리 사진을 대신 찍어줬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대이로95번길 5-3.

점심은 첸뜨로에서 먹었습니다. 갔는데 태우 가족이 있어서 당황했어요. 분명 다른 식당 간다고 했었는데. 친구들이랑 시켜먹듯이 메뉴들을 단품으로 주문했는데, 엄마는 스테이크 하나를 다 먹고 싶었나봐요. 다음에 돈 벌 때 오면 그렇게 주문해야겠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기숙사.

밥 먹고 학교로 돌아가서 학위기도 받고 사진도 찍었어요. 학위기에 쿰 라우데가 적혀있어서 찾아보니까 19학번부터 GPA가 3.6 이상이면 쿰라우데를 준다고 하더라고요. 예상에 없던 일이라 기뻤습니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아빠를 거의 삼각대로 쓰면서 교정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과학자 상 옆에서 사진을 꼭 찍고 싶었거든요. 날씨가 흐려서 그랬는지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마음껏 찍었습니다. 스토리에 사진을 올렸다가 아빠 칭찬을 많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진 참 잘 찍으신다고. 사실 몇 십 장 찍어서 하나 건진 거긴 하지만, 잘 나온건 사실이니까 헤헤!!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 77 기숙사.

헤일리가 혹시 아버님은 사진작가 하시고 어머님은 꽃꽂이하시냐면서 센스가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해온 꽃다발도 너무 제 취향대로 예뻤습니다. 파란색이랑 보라색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고!! 꽃다발을 어떻게 할까 하시다가 아빠가 꽃시장에 가자고 아이디어를 냈고, 엄마가 꽃다발을 골랐대요. 원래 저녁에 예약된 꽃다발이었는데 사장님이 다시 만들면 된다면서 내어줬대요. 다정하셔라. 꽃시장 꽃다발은 안 예쁠거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색 조합도 잘 되어있었고 큰 꽃도 엄청 많이 들어가있어서 예쁘더라고요. 하긴 매일 꽃을 다루는 전문가들이실텐데… 아무튼 꽃시장 가성비 짱!!

2024. 02. 02.,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6번길 25-1 1층.

저녁에는 태우랑 베라보바에 갔습니다. 졸업식 날이라 사람들이 꽤 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사장님들과 태우랑 재밌게 떠들다 왔습니다.

컬그랑 같이 개발을 했습니다. 동아리 탐방 때 새내기들에게 보여줄 컨텐츠가 필요했거든요. 사실 사람이 많다고 빨리 해결될 것 같은 일은 아니라고 예측해서 혼자 하려고 했는데, 컬그가 일을 나눠서 착착 잘 하더라고요. 덕분에 많은 부분들을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bun은 처음 써봤는데 node에 비해 모든 부분이 훨씬 빨라서 개발하는 맛이 나더라고요. 특히 패키지 설치할 때 속도가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지? 빨리 JS 생태계가 bun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비가 내린다면 우린 그냥 비 맞으며

나를 모두 드러내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해보였습니다.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고 싶었어요. 닿고 싶은 이상이 있었습니다. 닿기에는 견고한 거짓이 노력보다 수월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며 거짓과 오만을 조금씩 내버릴 수 있었습니다. 거짓으로 닿을 수 없는 이상을 봤어요.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학문과 인연보다도 부족함을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졸업해서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나의 거짓말과 아픔을 응원하며,


권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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